트럼프가 사우디에 원전을 팔면 중동에 핵폭탄이 생기는가 - 원자력협력 123 협정

2026. 5. 12. 00:02원자력 뉴스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자력발전소를 짓겠다고 나섰을 때, 많은 분들의 첫 반응은 아마 이것이었을 겁니다. "원전이 핵무기로 이어지는 거 아닌가요?" 이 우려는 근거 없는 불안이 아닙니다. 실제로 지금 미국 의회와 국제 비확산 전문가들이 정확히 같은 질문을 놓고 치열하게 논쟁 중입니다. 2026년 5월 13일, 트럼프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해 원자력 협력 협정(이른바 '123협정')을 최종화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면서, 이 질문은 더 이상 학문적 토론이 아니라 현실의 문제가 됐습니다.

'123협정'이란 무엇이고, 왜 이것이 문제인가

'123협정'은 미국 원자력법 123조에 근거한 원자력 협력 협정입니다. 미국이 다른 나라에 원전 기술·연료·설비를 수출하려면 반드시 이 협정을 먼저 체결해야 합니다. 일종의 '핵 무역 기본 계약'인 셈입니다.

그런데 모든 123협정이 같은 내용을 담는 것은 아닙니다. 비확산(핵무기 확산 방지) 분야에서 가장 엄격한 기준으로 꼽히는 것이 2009년 UAE와 체결한 협정입니다. UAE는 이 협정에서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명시적으로 포기했습니다. 이것을 업계에서는 '황금 기준(Gold Standard)'이라고 부릅니다.

사우디는 이 황금 기준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무함마드 빈 살만(MBS) 왕세자는 "이란이 핵무기를 가지면 사우디도 핵무기를 보유하려 시도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습니다. Arms Control Association이 입수한 행정부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논의 중인 초안 협정에는 IAEA(국제원자력기구) 추가의정서 미채택 및 우라늄 농축 허용 가능성이 포함돼 있습니다.

우라늄 농축이 왜 그렇게 민감한가

원자력발전에 쓰이는 핵연료와 핵무기에 쓰이는 핵물질은 같은 우라늄에서 출발합니다. 차이는 농축도입니다. 발전용 핵연료는 우라늄-235를 3~5% 수준으로 농축하지만, 핵무기에는 90% 이상의 고농축 우라늄이 필요합니다.

문제는 농축 기술 자체가 동일하다는 점입니다. 발전용 저농축 우라늄을 만드는 원심분리기 시설을 한번 갖추면, 이론적으로 같은 시설에서 농축도를 높여 무기급 우라늄을 만드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이란이 바로 이 경로를 밟아 국제사회와 수십 년간 충돌해 왔습니다.

미국이 제시한 타협안은 이른바 '블랙박스(Black Box) 모델'입니다. 사우디 영토에 농축 시설을 두되, 미국 인력만 접근할 수 있게 운영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비확산 전문가들은 이 모델이 사우디의 핵 기술 습득을 완전히 막기 어렵다고 지적합니다. Arms Control Association은 "이 협정이 광범위한 비확산 규범보다 사우디와의 거래를 우선시한다"는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중동 핵 도미노는 실제로 가능한가

사우디가 농축 권한을 가진 채 원전을 운영하게 된다면, 중동의 다른 나라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요? 지금 UN과 IAEA가 공동으로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이라크·쿠웨이트·카타르·오만·예멘·리비아 등 8개국이 이미 원전 도입을 평가하거나 계획 중입니다.

UAE는 한국이 건설한 APR1400 원전 4기를 가동해 국내 전력 수요의 25%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UAE는 황금 기준 협정을 수용하고 농축·재처리 포기를 선언했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사우디가 더 느슨한 조건으로 협정을 맺는다면, UAE를 포함한 다른 중동 국가들도 "왜 우리만 농축 권리를 포기해야 하느냐"는 압력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비확산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핵 도미노' 시나리오는 바로 여기서 시작됩니다. 한 나라의 예외가 지역 전체의 기준을 낮추고, 결국 IAEA 안전조치 체제 자체가 약화되는 흐름입니다. 이 우려는 미국 의회 내에서도 초당적으로 공유되고 있습니다. 협정이 의회에 제출되면 90일 이내에 부결 결의안을 통과시킬 수 있는 권한이 의회에 있으며, 현재 상당한 반대 세력이 형성돼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 KEPCO는 어떤 포지션인가

사우디는 Khor Duweihin 부지에 1.4GW급 원전 2기를 건설할 계획이며, 입찰에 참여한 기업은 중국 CNNC, 프랑스 EDF, 한국 KEPCO, 러시아 Rosatom입니다. 이 중 어느 회사가 계약을 따내느냐는 미-사우디 123협정의 내용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미국이 사우디와 123협정을 체결하면, 미국 원전 기업(Westinghouse·BWXT·NuScale)이 공식적인 수주 경쟁에 진입할 수 있게 됩니다. 이 경우 KEPCO는 직접 수주보다는 미국 기업과의 컨소시엄 협력 또는 하도급 참여 경로를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합니다.

KEPCO가 가진 가장 강력한 카드는 UAE Barakah 원전 실적입니다. 바라카 원전 4기가 UAE 전력의 25%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있다는 사실은 중동 전역에서 한국 기술의 신뢰도를 증명하는 살아있는 레퍼런스입니다. 어떤 형태로 계약이 구성되든, 이 레퍼런스는 KEPCO가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반면 협정이 성사되지 못하거나 중국·러시아 주도로 사업이 넘어갈 경우, KEPCO는 보조 기자재와 서비스 공급망 참여 가능성을 병행해서 준비해야 합니다. 수주를 못 해도 공급망에 들어가는 것이 중동 원전 시장에서 장기적 입지를 굳히는 현실적인 전략입니다.

거래의 실체: 핵 리스크인가, 비확산의 기회인가

일부 비확산 전문가들은 역설적인 주장을 내놓습니다. 미국이 사우디와 협정을 체결함으로써 러시아·중국 없이 미국 주도로 사우디 핵 프로그램을 관리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안전하다는 논리입니다. 러시아 Rosatom이나 중국 CNNC가 사우디 원전을 짓게 되면, 미국은 사우디의 핵 활동을 감시하거나 제어할 수단을 잃게 됩니다.

이 논리는 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농축 허용이라는 선례가 지역 전체의 핵 비확산 규범을 침식할 위험도 실재합니다. 두 가지 우려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트럼프 행정부의 이번 방문이 남길 역사적 평가를 결정할 것입니다.

5월 13일 트럼프-MBS 회담 결과가 공개되면, 중동 원전 시장의 판도가 결정되는 것은 물론, 수십 년간 국제사회가 쌓아온 핵 비확산 체제의 내구성도 시험대에 오르게 됩니다.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이 협정이 이란 핵 협상과 어떤 식으로 연동되는지, 그리고 두 협상이 중동의 핵 질서를 동시에 어떻게 재편하는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