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치료와 핵융합의 예상치 못한 만남 — Cu-67 동위원소가 여는 수익화 경로

2026. 5. 24. 02:05원자력 뉴스

핵융합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태양처럼 빛나는 거대한 도넛형 장치, 그리고 "50년 뒤면 상용화된다"는 오래된 농담이 먼저 떠오르는 분이 많으실 겁니다. 그런데 2026년 5월, 핵융합 기술이 전혀 다른 방향에서 뉴스를 만들었습니다. 암 치료에 쓰이는 의료 동위원소를 핵융합 장치로 생산한다는 것입니다.

의료 동위원소 Cu-67이란

먼저 Cu-67이 무엇인지부터 설명드리겠습니다. Cu-67은 구리의 방사성 동위원소로, '구리-67'이라고 읽습니다. 반감기는 약 2.58일, 즉 2일 반입니다. 베타선과 감마선을 동시에 방출하는데, 이 두 가지 특성이 의료에서 절묘하게 활용됩니다.

감마선은 몸 밖에서 감지할 수 있어 SPECT(단일광자방출 컴퓨터 단층촬영)로 암세포의 위치를 영상으로 볼 수 있게 해줍니다. 베타선은 짧은 거리에서 에너지를 방출해 암세포를 파괴하는 데 씁니다. 같은 동위원소 하나로 진단과 치료를 동시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를 테라노스틱스(theranostics, therapy+diagnostics)라고 합니다.

Cu-67 기반 방사면역치료제는 암 표적 항체에 Cu-67을 결합시켜 암세포만 찾아가 파괴하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부작용이 적고 정밀도가 높아 차세대 암 치료제로 주목받고 있으며, 방사성의약품 시장은 연간 15% 성장이 전망되는 고성장 분야입니다.

문제: Cu-67을 충분히 만들기 어렵다

좋은 의약품인데 왜 아직 보편화되지 않았을까요? 생산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Cu-67은 아연(Zn-68)에 고에너지 중성자를 쏘아 핵반응을 일으켜 만듭니다. 이 중성자를 만들려면 원자로나 입자가속기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충분한 중성자 플럭스(단위 면적당 중성자 수)를 만드는 설비가 세계적으로 많지 않습니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구조입니다. 현재 캘리포니아 Nusano와 호주 Clarity Pharmaceuticals 간에 공급 협약이 맺어져 있는 등 글로벌 수요 확대가 진행 중이지만, 생산 규모 확대가 핵심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핵융합 장치가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5월 20일, 캐나다 정부가 흥미로운 프로젝트에 자금 지원을 결정했습니다. 캐나다 의료동위원소 생태계(Canadian Medical Isotope Ecosystem)가 Promation, Astral Systems, McMaster 대학 협력체에 자금을 지원해 핵융합 반응 기반 Cu-67 생산 공정의 개념 증명(proof-of-concept) 프로젝트를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핵심은 Astral Systems가 개발 중인 '다중상태 핵융합(multistate fusion)' 반응기입니다. 고체 격자(solid-state lattice) 내에서 중수소-중수소(DD) 또는 중수소-삼중수소(DT) 핵융합 반응을 일으켜 고에너지 중성자를 생성합니다. 이 중성자 플럭스로 Cu-67 생산에 필요한 핵반응을 만들겠다는 구상입니다.

ITER나 JT-60SA처럼 플라즈마를 수백만 도로 가열하는 대형 토카막 장치를 상상하셨다면, Astral의 접근 방식은 그것과 다릅니다. 훨씬 소형이고, 상업 핵융합 전력 생산을 목표로 하지 않습니다. 의료 동위원소 생산에 필요한 중성자만 충분히 만들 수 있으면 됩니다.

핵융합 산업의 새로운 수익 경로

이 프로젝트가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핵융합 스타트업의 수익화 문제입니다.

핵융합 기술은 전력 생산까지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상업 핵융합 전력이 전력망에 공급되려면 2040년대 이후를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그 사이 투자를 유치하고 회사를 유지하려면 중간 수익원이 필요합니다. 의료 동위원소 생산은 그 중간 단계 수익 모델의 유력한 후보입니다. 핵융합 장치의 부산물로 나오는 중성자를 팔 수 있다면, 전력 판매 이전에도 사업성을 입증할 수 있습니다.

McMaster 대학은 이미 의료 동위원소 연구 인프라가 탄탄한 곳으로, 이번 협력 체계는 캐나다를 글로벌 방사성동위원소 공급망의 핵심 거점으로 강화하는 데도 기여할 것으로 보입니다.

'먼 미래 기술'이라는 낙인을 넘어서

Cu-67 핵융합 생산 프로젝트의 개념 증명이 성공한다면, 핵융합을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 달라질 것입니다. '전기를 만드는 꿈의 기술'을 넘어 '지금 당장 암 환자를 도울 수 있는 중성자 공급원'이라는 실용적 역할이 추가되는 것입니다.

물론 개념 증명에서 상업 생산까지는 넘어야 할 기술적·경제적 허들이 많습니다. 핵융합 기반 생산의 비용 경쟁력이 기존 원자로나 가속기 기반 생산과 비교해 어떤지 검증하는 것이 향후 관건입니다.

그럼에도 이번 프로젝트는 핵융합 기술의 응용 가능성이 예상보다 넓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에너지 전환의 큰 그림 안에서, 핵융합이 어떤 역할을 맡게 될지 지켜보는 것이 흥미로운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