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5. 24. 02:08ㆍ원자력 뉴스
현재 전 세계에서 상업 운전 중인 원자로 대부분은 '열중성자로'입니다. 빠른 속도의 중성자를 물로 감속시켜 핵분열을 일으키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원자로 기술의 다음 단계로 주목받는 것이 '고속중성자로'입니다. 중성자를 감속시키지 않고 빠른 상태 그대로 핵분열에 활용하는 방식으로, 기존 원자로가 다 쓰지 못한 핵연료를 재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핵연료 사이클 혁명'의 열쇠로 불립니다. 5월 21일, 세계 유일의 산업용 고속로 운영국 러시아가 이 분야에서 다시 한번 큰 선언을 했습니다.
러시아의 선언 — 2042년까지 9기 추가
Rosatom(러시아 국영 원자력 기업) 제1부사장 Alexander Lokshin은 베이징에서 열린 IAEA FR-26 컨퍼런스(고속중성자로 국제 컨퍼런스) 총회에서 러시아 전력 배치 계획(2042년까지)에 고속중성자로 9기 추가 건설이 포함됐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Lokshin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속로와 폐쇄 핵연료 사이클로의 점진적 전환은 전 세계 원자력 에너지 부문의 필요하고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침입니다."
러시아는 이미 산업 규모의 고속중성자로를 운영 중인 세계 유일의 국가입니다. BN-600(벨로야르스크 3호기, 600MWe)과 BN-800(벨로야르스크 4호기, 800MWe) 2기가 이미 상업 운전 중입니다. 여기에 BN-1200M(1,200MWe, 나트륨 냉각)과 BREST-OD-300(300MWe, 납 냉각, 2028년 완공 목표) 등이 추가 건설 계획의 핵심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고속로가 특별한 이유 — 핵연료를 '재활용'한다
고속중성자로의 핵심 장점을 이해하려면 '폐쇄 핵연료 사이클'이라는 개념부터 짚어야 합니다.
현재 대부분의 원전은 '개방형 핵연료 사이클'을 씁니다. 우라늄을 한 번 태우고(핵분열시키고), 사용 후 핵연료로 저장합니다. 이 사용후핵연료에는 핵분열이 덜 된 우라늄과 새로 생성된 플루토늄 등이 잔뜩 남아 있습니다. 쓰다 남긴 배터리를 그냥 버리는 셈입니다.
고속중성자로는 이 사용후핵연료를 다시 연료로 쓸 수 있습니다. 플루토늄과 마이너 악티나이드(핵분열 과정에서 생성되는 방사성 물질)를 연소시켜 에너지를 얻으면서 동시에 방사성 폐기물의 양과 독성도 줄일 수 있습니다. 마치 음식물 쓰레기를 퇴비로 재활용하는 것처럼, 핵폐기물을 연료로 재활용하는 것입니다.
Rosatom은 "고속로 연료 투입의 확대에 따라 천연우라늄 절약 및 사용후핵연료 문제 해결에 기여한다"고 밝혔습니다.
글로벌 Gen-IV 경쟁 구도
러시아만이 고속로를 추진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TerraPower의 나트리움(Natrium, 나트륨 냉각 고속로) 원자로가 와이오밍주 케머러에서 건설을 시작했고, Oklo의 오로라(Aurora) 마이크로 고속로도 인허가 심사 중입니다. 중국은 CFR-600(중국 고속 증식로 실험로)을 건설 중이며, 인도는 PFBR(시험용 고속 증식로) 가동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KAERI(한국원자력연구원)가 SFR(소듐냉각 고속로)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이 경쟁의 의미는 단순한 기술 과시가 아닙니다. 고속로를 먼저 상용화한 나라가 핵연료 사이클 서비스를 수출하고, 사용후핵연료 처리 솔루션을 제공하는 새로운 원자력 경제의 주도권을 쥘 수 있습니다.
우라늄 시장에 미칠 장기 파장
폐쇄 핵연료 사이클이 본격 가동되면 우라늄 수요 구조 자체가 바뀝니다. 현재는 원전에서 쓸 우라늄을 계속 광산에서 캐내야 합니다. 고속로가 사용후핵연료를 재활용하면, 새로 채굴해야 하는 천연우라늄의 양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장기 시나리오입니다. 러시아의 9기 건설 계획은 2042년까지이고, 전 세계적인 폐쇄 사이클 전환에는 수십 년이 걸릴 것입니다. 단기적으로 우라늄 수요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원자력 공급망 전략을 20~30년 시계로 세우는 기업과 정부에게는, 이 구조 변화를 미리 고려해야 한다는 신호가 됩니다.
베이징에서 열린 IAEA FR-26 컨퍼런스에 중국·인도·한국 등 주요 고속로 개발국이 모두 참석한 자리에서 러시아가 9기 선언을 한 것은 상징적입니다. 고속중성자로 기술의 패권을 둘러싼 경쟁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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