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빅뱅 — 미국과 영국이 같은 주에 원자력 규제를 동시에 뜯어고친 이유

2026. 5. 24. 02:16원자력 뉴스

"원자력 발전소 짓는 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리나요?" 이 질문을 자주 듣습니다. 기술의 문제가 아닐 때가 많습니다. 인허가, 즉 규제 심사에서 걸리는 시간이 상당 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런데 2026년 5월 셋째 주, 미국과 영국이 거의 동시에 그 규제 구조를 뜯어고치겠다는 신호를 쏘아 올렸습니다.

미국 상원, 하루에 법안 세 개를 동시 심의하다

5월 20일, 미국 상원 환경·공공사업(EPW) 소위원회 위원장 신시아 럼미스(공화당, 와이오밍) 의원이 원자력 미래에 관한 청문회를 주재했습니다. 이 청문회에서 하루에 법안 세 개가 동시에 심의 테이블에 올랐습니다.

첫 번째, Build Nuclear with Local Materials Act입니다. 원전의 비핵 구역·비방사선 노출 구조물에 일반 상업용 콘크리트와 철강을 사용할 수 있도록 NRC(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가 허용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입니다. 지금은 원전 건설에 들어가는 콘크리트와 철강도 '핵등급(nuclear-grade)' 기준을 충족해야 합니다. 이 기준을 맞추는 데 드는 비용과 시간이 건설 원가를 크게 높이는 주범 중 하나였습니다.

두 번째, RECHARGE Act입니다. 'Revitalizing Energy Communities by Hosting Advanced Reactors and Generating Energy'의 줄임말로, 폐쇄된 석탄발전소나 산업 부지에 선진원자로를 배치하는 것을 촉진하는 법안입니다. TerraPower가 와이오밍주 케머러에 짓고 있는 나트리움(Natrium) 원자로 부지가 이 법안의 모범 사례로 제시됐습니다. 석탄 발전소가 문을 닫은 지역의 전력망·숙련 인력·부지를 활용해 원자력으로 새 출발을 하는 그림입니다.

세 번째, Enrichment Licensing Modernization Act입니다. 국내 우라늄 농축 시설의 인허가 절차를 현대화·간소화하는 법안입니다. 럼미스 의원은 "미국은 성장하는 원자력 산업을 뒷받침할 국내 농축 역량이 부족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세 법안이 하루 청문회에 동시에 올라온 것은, 1950년대 원자력법 제정 이후 가장 활발한 원자력 입법 활동이 진행 중임을 보여줍니다.

NRC도 움직였다 — 8개 파트 규정 전면 개정

같은 주에 NRC는 방사성 부산물 핵물질 사용에 관한 규정 대개정안을 연방관보(Federal Register)에 고시했습니다. 개정 대상이 10 CFR(연방 규정집) 파트 30, 31, 32, 34, 39, 40, 70, 150 등 8개 파트에 달합니다. 의료 영상, 암 진단, 산업용 방사선 촬영, 지질 탐층 등 광범위한 핵물질 활용 분야가 대상입니다.

법률 분석 전문기관 McGuireWoods는 이번 개정을 "20년 만에 NRC의 가장 중대한 핵의학 분야 조치"로 평가했습니다.

이 모든 움직임의 배경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행정명령 EO 14300이 있습니다. 'NRC 개혁 명령'이라고도 불리는 이 명령은 NRC에 규정 전면 검토와 신속한 인허가 현대화를 요구했습니다. 2026년 11월까지 최종 규칙 발령이 목표입니다.

영국 국왕이 선포한 '세기의 규제 리셋'

대서양 건너 영국에서는 더 극적인 장면이 연출됐습니다. 5월 13일, 찰스 3세 국왕이 의회에서 읽은 King's Speech에 핵규제법(Nuclear Regulation Bill) 입법 예고가 포함된 것입니다. 국왕 연설에 특정 법안이 명시된다는 것은 정부의 최우선 입법 의제로 확정됐다는 의미입니다.

법률 전문가들은 이번 개혁을 "이 세기 가장 중요한 영국 원자력 규제 리셋"이라고 평가합니다. 주요 내용을 보면:

첫째, ONR(영국 원자력규제청)과 DNSR(국방핵안전규제청)을 2028년까지 합병합니다. 분산된 규제 권한을 단일 창구로 통합하는 것입니다.

둘째, 2028년까지 새로운 핵규제위원회(Nuclear Commission)를 설립합니다.

셋째, ONR의 법령 목적에 국가안보, 기후, 경제성장 등 전략적 요소를 고려할 권한을 허용합니다. 지금까지 규제기관은 안전만을 기준으로 판단했지만, 앞으로는 국가 전략 목표도 고려에 넣을 수 있게 됩니다.

넷째, 반도시 지역에도 원전 부지를 허용하는 경로를 신설합니다.

이 개혁의 목적지는 분명합니다. 영국은 현재 '세계에서 원전 건설이 가장 비싼 나라'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습니다. Hinkley Point C 원전은 역대 세계 최고 건설비를 기록 중입니다. 규제의 복잡성이 비용을 폭발적으로 키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우연의 일치인가, 전략적 조율인가

같은 주에 미국과 영국이 동시에 원자력 규제를 대대적으로 개편하는 것은 단순한 우연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작년 트럼프 대통령의 영국 국빈 방문 당시 양국은 원자력 협력 심화에 합의했습니다. 규제 현대화는 그 협력의 실질적 기반을 마련하는 과정으로도 읽힙니다.

더 넓게 보면, 원자력 부흥을 선언한 서방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부딪히는 문제가 바로 '규제 장벽'입니다. 안전 기준은 유지하면서도 불필요한 행정 절차를 줄이고, 인허가 속도를 높이는 것이 지금 원자력 경쟁력의 핵심 과제가 됐습니다.

규제 빅뱅이 실제 건설비 절감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입법과 행정명령이라는 형태로 이미 방향이 설정됐다는 것, 그것이 지금 시점의 핵심 신호입니다. 원자력 기술의 경쟁은 이제 원자로 성능만이 아니라 인허가 속도 경쟁이 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