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6. 20. 01:05ㆍ원자력 뉴스
AI 열풍이 전력망을 흔들고 있습니다. 대형 데이터센터 하나가 소도시 하나와 맞먹는 전력을 소비한다는 이야기, 이미 한 번쯤 들으셨을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상상이 있습니다. 바다 위에 원자력발전소를 띄우고, 거기서 나오는 전기로 해상 데이터센터를 돌린다는 구상입니다.
공상과학 소설처럼 들리시나요? 그런데 2025년 말부터 2026년 중반 사이에 미국에서 일어난 일들을 보면, 이 이야기가 조용히 현실의 레일 위로 올라오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규제 기관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미국 해안경비대가 '해양 원자력 전담 부서'를 만든 이유
2025년 12월, 미국 해안경비대(USCG, U.S. Coast Guard)는 내부에 해양원자력정책부서(Maritime Nuclear Policy Division)를 신설했습니다. 장관급 독립 부처가 아니라, 해안경비대 내 설계·엔지니어링 기준 담당 사무소(CG-ENG) 안에 설치된 정책 전담 조직입니다.
이 부서의 핵심 임무는 원자력 기술을 해양교통체계(MTS, Marine Transportation System)에 안전하고 보안성 있게 통합하는 정책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바다 위에서 원자력을 쓸 때 생기는 온갖 질문들 — 선박 설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항만에 들어올 수 있는지, 사고 시 대응은 어떻게 하는지 — 을 USCG 차원에서 정리하는 창구 역할입니다.
원자로 자체의 안전 인허가는 여전히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몫입니다. USCG는 선박과 해양시설, 항만과 해양환경, 보안과 국제기준 쪽을 맡습니다. 두 기관이 서로 다른 역할을 나눠 갖는 구조인데, 이 부서가 생겼다는 것은 그 역할 분담을 본격적으로 정리할 준비가 됐다는 뜻입니다.
해양 원자력이 더 이상 실험실 속 연구 주제가 아니라, USCG의 공식 정책 영역이 됐습니다.

부유식 원전이란 무엇이고, 왜 데이터센터와 연결되는가
부유식 원전(FNPP, Floating Nuclear Power Plant)은 원자로를 선박이나 바지선(pontoon) 형태의 해양 구조물에 탑재해 바다 위에 띄워 놓는 발전소입니다. 육상에 부지를 확보할 필요가 없고, 전력이 필요한 곳 근처 해안에 계류해 전기를 공급하는 방식입니다.
미국 DOE 산하 국립원자로혁신센터(NRIC)는 이 부유식 원전의 잠재적 활용 분야 중 하나로 부유식 데이터센터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논리는 단순합니다. AI 데이터센터는 전기를 엄청나게 먹으면서 동시에 냉각을 위한 물도 많이 필요합니다. 바다 위라면 냉각수를 구하기 쉽고, 원자력은 날씨와 무관하게 24시간 안정적으로 전기를 공급합니다.
물론 해상에서 원자력 시스템을 운용하는 일은 육상보다 훨씬 복잡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파도, 충돌, 허리케인, 선체 침수 같은 해양 특유의 위험에 원자로가 노출되기 때문입니다. 원자로 사고와 해양 사고가 동시에 발생하는 복합사고 시나리오를 처음부터 안전 평가에 포함해야 합니다. 이것이 해양 원자력 설계가 기술적으로 까다로운 이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부유식 전력 공급 플랫폼이 원자력 추진 선박보다 실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원자력 추진 상선은 국제 항만 입항 허용성, 승무원 자격, 핵연료 관리, 보험·책임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반면 부유식 원전은 특정 위치에 계류해 전력만 공급하는 형태라 규제 논의의 틀을 잡기가 상대적으로 용이합니다.

국제 기준은 어떻게 바뀌고 있는가 — 2030년이 중요한 이유
미국만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국제해사기구(IMO)도 해양 원자력을 위한 국제 안전기준을 현대화하는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1981년에 채택된 핵상선 안전규정(Code of Safety for Nuclear Merchant Ships)은 40년이 넘은 기준입니다. 그사이 소형모듈원자로(SMR, Small Modular Reactor — 기존 대형 원전보다 훨씬 작은 규모로 모듈화된 원자로)가 등장했고, 부유식 원전이라는 개념 자체가 새로 생겼습니다. IMO는 이 기준을 개정하고 선박 안전의 근간인 SOLAS(국제해상인명안전협약) 제8장도 손보기로 했습니다.
목표 시점은 2030년입니다. 2026년 1월 IMO SDC(선박설계·건조 소위원회) 12차 회의에서 확정한 작업 계획에 따르면, 2027년까지 실무그룹 보고서를 제출하고 2030년 MSC(해사안전위원회) 118차 회의에서 개정 기준을 채택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선급기관도 앞서가고 있습니다. 미국선급협회(ABS)는 2024년 10월 해양·해상 원자력 전력 시스템을 위한 요구사항을 발표했습니다. 핵추진 선박이 아니라 외부 수요자에게 전력을 공급하는 원자력 전력 서비스 선박을 대상으로 한 기준입니다. 이는 "기술이 준비되면 기준을 만들겠다"는 태도에서 "기준을 먼저 만들어서 기술을 끌어당기겠다"는 방향 전환을 의미합니다.
2026년 5월에는 미국 교통부(DOT)와 해양청(MARAD)이 상업용 해운에 SMR을 적용하는 이니셔티브를 발표하고 산업계 의견을 수렴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술 개발이 아니라 상업 운항의 제도적 요건 — 책임, 보험, 항만 접근, 선박 검사 체계 — 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겠다는 신호입니다.
가능성의 실제 크기 — 기술보다 제도가 먼저 열려야 한다
해양 원자력이 AI 데이터센터 전력난의 해법이 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솔직하게 답하면 이렇습니다. 기술 자체의 가능성은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이 실제 사업으로 이어지려면 제도의 관문이 먼저 열려야 합니다.
NRC는 2026년 6월 기준으로 기존 인허가 체계(Part 50, Part 52, Part 53)를 해양 원자로에 적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며, 해양 원자력만을 위한 백서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USCG의 새 부서가 USCG·NRC 간 역할 분담을 정리하고 있고, IMO는 2030년을 목표로 국제 기준을 다시 쓰는 중입니다.
이 모든 움직임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입니다. 해양 원자력의 규제 경로가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그 경로를 만드는 작업이 공식적으로 시작됐다는 것입니다.
항만 전력 공급이나 연안 산업 시설용 부유식 원전처럼 정지된 위치에서 전력을 공급하는 모델이 먼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원자력 추진 상선이나 이동형 해상 데이터센터처럼 국제 항만을 드나드는 복잡한 형태는 국제 기준이 정비된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2026년부터 2030년까지의 4년이 이 분야의 방향을 결정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기준이 만들어지는 지금, 어떤 나라와 기업이 그 논의 테이블에 앉아 있느냐가 10년 뒤의 시장 구조를 가를 수 있습니다. 기술 경쟁이 아직 열린 이 시점에, 제도의 문이 어떻게 열리는지 지켜봐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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