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SMR 원년 — 스웨덴 납냉각 원자로가 여는 새로운 전쟁

2026. 5. 24. 02:25원자력 뉴스

소형모듈원자로(SMR, Small Modular Reactor)라는 이름이 뉴스에 자주 등장하지만, 실제로 상업 운전 중인 서방의 SMR은 아직 없습니다. 관심과 투자는 쏟아지지만, 정식 허가를 받아 땅에 짓겠다는 신청이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첫 장이 2026년 5월 스웨덴에서 열렸습니다.

스웨덴, 역사적인 첫 신청

5월 19일, 스웨덴 원자로 개발사 Blykalla가 스톡홀름 북쪽 약 2시간 거리의 노르순데트(Norrsundet, 예블레 시) 부지에 납냉각 SEALER SMR 6기(55MWe × 6기 = 총 330MWe) 건설 허가를 스웨덴 정부에 공식 신청했다고 발표했습니다.

Blykalla CEO 야코프 스테드만은 "이번 신청은 스웨덴 역사상 최초의 선진원자로 상용 허가 신청"이라고 밝혔습니다.

SEALER(Swedish Advanced Lead-cooled Reactor)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납(lead)으로 냉각하는 소형 원자로입니다. 납냉각 원자로의 특성을 간략히 설명드리면, 납은 상온에서 고체지만 327도 이상에서 액체가 됩니다. 이 액체 납이 원자로 내부를 순환하며 열을 빼냅니다. 납은 중성자를 잘 흡수하는 성질이 있어, 원자로가 비정상 상태가 되면 자연적으로 핵분열이 줄어드는 자기제어 특성을 갖습니다. 이를 '걸어서 대피해도 안전한(walk-away safe)' 원자로라고 부릅니다.

왜 납냉각인가, 그리고 왜 지금인가

기존 상업 원전 대부분은 물(경수)로 냉각합니다. 한국 원전도 경수로입니다. SMR 분야에서도 물냉각 방식이 다수를 이루는데, Rolls-Royce SMR(영국), BWRX-300(GE Vernova-Hitachi, 미국)이 대표적입니다.

납냉각로는 물냉각 방식과 비교해 몇 가지 장점이 있습니다. 높은 온도에서 운전하므로 열 효율이 높고, 물처럼 고압을 필요로 하지 않아 안전 구조가 단순합니다. 또한 화학적으로 안정적이어서 사고 시 수소 폭발 위험이 없습니다.

Blykalla가 신청한 330MWe는 "약 15만 가구·대형 산업 시설·중형 데이터센터에 공급 가능한 전력 규모"라고 회사는 설명합니다. 데이터센터를 명시적 타깃으로 내세운 것이 주목됩니다. 스웨덴의 신속 원자력 법제가 시행된 이후, AI 확산·전기화·그린수소 등 급증하는 전력 수요를 원자력으로 대응하려는 유럽의 움직임이 구체적인 허가 신청으로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스웨덴만이 아니다 — 유럽 전체의 SMR 경쟁

스웨덴에서는 동시에 여러 SMR 프로젝트가 경쟁 중입니다. 국영 유틸리티 Vattenfall도 링할스(Ringhals) 원전 인근에 GE Vernova Hitachi의 BWRX-300 또는 Rolls-Royce SMR 기반 약 1,500MW 규모의 SMR 단지 건설에 대해 정부 자금 지원을 신청한 상태입니다. Kärnfull Next라는 또 다른 개발사도 스웨덴 남부에 SMR 프로젝트 신청을 완료했습니다.

부지 허가를 획득하고 최종 투자 결정 조건을 충족하면 2030년대 초 운전 목표를 세우고 있습니다. 체코는 Westinghouse AP1000 원전 신규 건설을 진행 중이고, 폴란드도 원전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유럽 전체에서 원자력 르네상스가 구체적인 프로젝트 형태로 진행 중입니다.

허가 신청의 의미와 앞으로의 과정

물론 허가 신청이 완공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Blykalla의 노르순데트 신청은 이제 토지환경법원·스웨덴방사선안전청(SSM)·예블레 시 지방자치단체 등의 다단계 심사를 거쳐야 합니다. 여기까지 수년이 걸릴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신청이 중요한 것은, "짓겠다"는 의지를 공식화했다는 점입니다. 개념 설계에서 부지 허가 신청으로 넘어온 것은 기술 개발 단계를 벗어나 현실화 단계로 진입했음을 뜻합니다.

Blykalla가 25년 이상의 연구 성과를 상업화한 납냉각 SMR이 실제로 스웨덴 노르순데트 항구 옆에 세워지는 날이 온다면, 그것은 유럽 Gen-IV 상용화의 첫 사례가 됩니다. 그 과정에서 납냉각 소재, 특수 펌프, 방사성 차폐 기술, 디지털 계측 제어 시스템 등 새로운 공급망 수요가 형성될 것입니다.

유럽 SMR 시장이 아직 '시작 전'이었다면, 2026년 5월은 그 시작을 알리는 총소리가 울린 해로 기록될 것입니다.